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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 김점숙의 시간

국내 여성 최초 토왕폭¹단독 등반 이후
요세미티, 알프스, 히말라야를 넘나든 김점숙.

그녀에게 등반은 매 순간의 판단과
그로 인한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시간이다.
정상은 목적지가 아닌 과정이며,
‘알파인’이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남겨두는 선택이다.

¹설악산 외설악에 있는 길이 320m, 3단으로 이루어진 국내 최장의 연폭(連瀑)

Ice climbing wall
Kim Jeong-suk with climbing gear

“단독 등반이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더 편했어요.
내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되니 몰입이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1994년, 김점숙은 토왕폭을 프리솔로²로 등반하기 전에 먼저 그 루트를 리드³로 등반해 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이 루트를 단독으로 오르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등반계에서는 단독 등반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그녀는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결정을 내렸다.

“그럼 나도 토왕폭을 단독으로 가보자” 그렇게 시작한 등반은, 결과적으로 여성 최초 프리솔로 등반이 됐다. 그 순간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오르는 것 그 자체였다. 선배 클라이머 정승권이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어 현장에서도 차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단독 등반의 단순함이었다. 전년도 리드 등반 때는 파트너를 배려하며 신경 쓸 것이 많았지만, 프리솔로는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²로프나 파트너·보조 장비 없이 암벽을 오르는 등반
³선두에 서서 로프를 직접 걸어 올라가는 방식

Kim Jeong-suk in beanie
Ice climbing equipment

“알파인 등반은 자급자족이에요.
  내 배낭 하나로 시작해서, 내 판단으로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등반’이죠.”



알파인 등반은 등반자가 식량, 장비, 숙박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고정 자일⁴이나 셰르파⁵의 도움 없이 스스로 책임지고 오르기 시작해, 스스로 책임지고 내려온다. 김점숙은 인공 암벽장에서 훈련을 시작했고, 주말마다 자연암과 빙벽을 오르며 경험을 쌓았다. 경기 등반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기술과 체력을 다져 2002년 알프스에서 본격적으로 알파인 스타일을 접했다. 1989년부터 등반을 해왔던 그녀에게 알파인 스타일은 경험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도달한 방식이었다.

가장 큰 충격은 환경 차이였다. 국내 루트는 볼트⁶와 슬링⁷으로 피치 종료 지점이 명확한 편이지만, 알프스에서는 간단한 코드 슬링⁸하나만 걸려 있거나, 볼트가 전혀 없는 구간도 많았다. 스스로 확보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등반 방식은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2006년 그랑드 조라스에서의 등반은 알파인의 또 다른 현실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여성 팀으로 진행한 등반은 속도와 무게 문제를 동시에 고민해야 했다.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무게를 줄여야 하고, 무게를 줄이면 위험에 더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침낭을 포기하고, 우모복 하나와 배낭에 발을 넣은 채 정상에서 비박을 했다. 발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버티던 그 밤, “해는 곧 뜬다.”라는 생각 하나로 긴 시간을 견뎠다.

당시엔 고단했지만,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Historical climbing photo

“여성 팀을 꾸린 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각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팀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남성 클라이머들과의 등반에서 그녀는 체력 차이뿐 아니라, 그로 인해 스스로 위축되는 감정을 자주 느꼈다. 함께하면 의지하게 될까 봐, 혹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할까 봐 주저하게 되는 감정.

등반은 각자의 역할을 동등하게 수행해야 하는 활동이기에, 그녀는 체력과 리듬이 비슷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여성 등반대였다. 2006년 알프스에서의 여성 팀 등반은 그 출발점이었다. 함께한 여성 클라이머들은 충분히 뛰어난 역량을 지녔고, 실제로도 각자의 역할을 잘 해냈다.

⁴등반 중 안전과 이동을 위해 미리 설치해 두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로프
⁵히말라야 등 고산 등반에서 짐 운반, 루트 개척, 고정 로프 설치 등 등반을 지원하는 현지 전문 인력
⁶암벽에 고정 설치된 금속 앵커로 로프나 장비를 걸어 확보 지점으로 사용
⁷나일론이나 다이니마 소재의 띠 형태 장비로, 볼트나 자연물에 걸어 확보·연결·하강 지점을 만드는 데 사용 ⁸얇은 코드(로프)의 소재로, 주 로프나 장비에 매듭으로 연결해 사용하는 보조 슬링

Ice climbing action

“정상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죠.“
“극한에서는‘사소한 차이‘가 체력과 판단을 지켜주고,
그게 생명으로 이어져요.“



“저는 알파인 등반을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캠프가 시작점이 아니라, 출발 전부터 이미 등반은 시작된 거고, 정상은 끝이 아니라 그 여정의 한 과정일 뿐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체력과 정신력, 판단을 끝까지 남겨두는 게 중요하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나를 끝까지 지켜주는 건 결국 그런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그 준비와 선택의 결과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김점숙에게 장비는 로프나 스크루⁹만이 아니다. 어프로치화¹⁰부터 셸¹¹까지. 몸을 지켜주는 건 전부 장비다. 평소엔 티가 안 난다. 하지만 날씨가 급변하거나 극한으로 밀리면 차이가 크게 난다. 알파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체력과 판단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도 장비다. 준비의 퀄리티가 생존을 가른다는 걸, 그녀는 경험으로 안다.


⁹아이스 스크루 : 빙벽(얼음)에 직접 박아 설치하는 금속 확보 장비
¹⁰하이킹화의 보행 안정성과 암벽화의 접지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등산화
¹¹바람·비·눈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수, 방풍 기능을 갖춘 아우터

Ice formations on rock face

“등반은 늘 나에게 묻죠.
‘정말 네가 가고 싶은 산이냐’고.”
“기록이나 스포트라이트보다,
내 마음의 결정이 먼저여야
후회가 없어요.”


김점숙은 등반을 결정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산을 정말 가고 싶은가?” 그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등반을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에 떠밀려 산을 오르는 건 위험하다. 특히 젊은 클라이머들이 기록이나 외부 평가를 의식해 무리한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나는 이 기록을 위해 내 삶을 걸 수 있는가?” 물음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어야만 등반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삶의 철학도 이와 맞닿아 있다. 남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평범하게,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등반과 인생 모두에서 그녀가 지향하는 태도다.

Full body ice climbing shot

“알파인은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과정이에요.
목표는 ‘극한‘이 아니라
준비한 등반을 안전하게 완결하는 것이죠.“



“등반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등반을 결정했다면 그에 맞게 준비하고, 안전하게 등반할 방법을 끝까지 고민해야 해요. 그리고 현장에서 준비가 덜 됐다고 느끼면 과감히 돌아서는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돌아서서 정비하고, 다시 도전하면 돼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많은 등반을 할 수 있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길 추천해요.‘


김점숙은 극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준비한 등반을 끝까지 안전하게 완결하는 것. 그것이 알파인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자연은 늘 예측할 수 없기에, 그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많은 등반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그 경험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녀는 모든 클라이머가 자신만의 속도로 준비하고, 필요할 땐 과감히 돌아서는 결정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Snow covered peak
Kim Jeong-suk smiling

Location | 강원도 인제군 매바위 Film / Photography | Lighten Outdoor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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